본문 바로가기
영화 리뷰

넷플릭스 영화 [극비수사] 줄거리 실제 사건 실화영화 범죄영화

by eunyeong818 2022. 12. 11.
반응형

1. 영화 [극비수사] 줄거리

1978년 부산의 한 초등학교에서 유명한 부잣집의 외동딸인 '은주'가 하교 도중 납치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가족들은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는 동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점집을 찾아다니기 시작한다. 하지만 용하다는 점쟁이들은 모두 은주가 죽었다고 말하고, 절망하던 은주의 엄마에게 은주의 고모는 '중산'이라는 이름의 한 도사 이야기를 꺼낸다. 한편 사건 담당 형사들이 마음에 들지 않던 은주의 아빠는 또 다른 형사인 '길용'에게 수사를 부탁한다. 길용은 그날 학교 앞에서 같이 차에 탔던 은주의 친구인 '민혜'에게 들은 말로, 범인이 길을 잘 몰라서 아이들이 가르쳐준 대로 움직였고 말투는 서울말을 사용했다고 한다. 면식범일 것으로 생각한 중부서 형사들과는 달리, 길용은 범인이 외지인이라 확신했고, 만약에 은주의 집이 민혜의 집보다 가까웠으면 납치당하는 사람은 은주가 아닌 민혜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관할이 다르다며 사건을 거절하려던 길용은 은주 엄마의 간절한 표정에 결국 제안을 수락하고, 아이를 구하기 위한 수사에 착수한다. 형사 길용은 이 사건이 철저히 극비로 가야지만 은주가 살아서 돌아온다고 이야기한다. 길용은 범인의 단서를 잡기 위해 다방면에 걸쳐 수사를 진행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범인의 전화가 걸려 오지 않았다. 한편 길용을 제외한 부산 경찰들은 은주가 죽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범인을 잡아 실적을 채울 생각뿐이었다. 그렇게 하염없이 범인의 전화를 기다리던 어느 날, 길용은 은주의 부모님으로부터 자신이 사건을 맡은 이유에 대해 전해 듣게 되는데, 길용의 사주여야만 은주를 살릴 수 있다는 어느 한 도사의 말 때문이었다고 한다. 자초지종을 알게 된 길용은 도사 중산을 만나서 자신을 지목한 이유에 관해 묻지만, 사주팔자를 믿지 않는 길용은 중산의 이야기를 헛소리라 치부한다. 하지만 며칠 후, 드디어 범인에게서 전화가 걸려 오고 그날은 도사가 범인에게서 전화가 올 것이라 예언한 그 날짜였다. 그렇게 범인과의 통화를 통해 희망을 찾은 은주의 엄마는 길용과 함께 약속 장소로 나가지만, 범인은 몇 번이고 약속을 바꿔가며 그들의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

2. 실제 사건

1978년 9월, 당시 10세이던 '정효주'의 유괴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그녀는 바로 부산의 수산업체 사장이자 대부호의 딸이었고, 범인은 돈을 노리고 그녀를 유괴하였다. 유괴범은 정효주의 몸값으로 5천만 원을 요구하며, 사진과 편지 등을 보내고 20여 차례의 협박 전화를 했다. 긴 유괴 기간이었던 33일이라는 시간동안 정효주의 엄마와 고모는 애원하는 마음으로 여러 점집을 찾아 다니는데 모두 하나같이 아이가 죽었을 것이라는 말을 하였다고 한다. 희망이 점점 사라지는 정효주의 엄마와 고모는 마지막으로 도사 '김중산'을 찾아가는데, 그는 '아이의 팔자가 드세기 때문에 살아있다.'라는 말을 하였다고 한다. 그 뒤 '류한평' 박사가 목격자에게 최면을 걸어 목격자의 기억 속에서 범인의 차량번호를 알아내게 되고, 이를 기준으로 잠복 중이던 '공길용'형사에 의해 드디어 범인이 잡힌다. 정효주는 범인에게 33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붙잡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저씨는 저에게 먹을 것도 주고 따뜻하게 주었다.'라고 했을 만큼 범인이 그녀를 잘 대해주었다고 한다. 경찰이 정효주를 찾아냈을 때, 정효주는 정말로 매석환이 아빠의 친구라고 믿고 있었으며, 매석환을 체포한 경찰들에게는 자신에게 예쁜 옷도 사주고 맛있는 것도 많이 사준 착한 아저씨를 왜 잡아가냐며 화를 냈고 이에 경찰들이 굉장히 당황했다고 한다. 그 후 정효주를 유괴했던 유괴범 '매석환'은 당시 10년 형을 받고 1989년 대구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했다고 한다. 다행히 범인이 아이를 험하게 다루지 않았다는 점과 전 세계적으로 유괴당한 아이가 되돌아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 일은 전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르게 됐었다. 하지만, 1차 납치 후 7개월만인 1979년 4월 14일에 두 번째 유괴가 발생한다. 첫 번째 유괴 사건이 마무리된 후 정효주는 매일 가족들과 같이 등교하였는데, 하필 우연히 딱 하루 혼자서 등교를 한 날에 또다시 납치를 당하게 된다. 이번 유괴범은 1차 유괴범과 달리 정효주의 신체를 절단하겠다는 등 잔인한 협박을 서슴지 않았으며, 몸값으로 1억 5천만 원을 요구했다고 한다. 두 번이나 유괴된 정효주의 사건은 전국의 신문과 방송에서 집중 보도가 이루어졌으며, 부산시에서는 60만 장의 전단을 시민들에게 돌려 범인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또한 1차 유괴사건의 범인이었던 매석환도 당시 감옥에서 편지를 썼고 '지금 당신이 겪고 있는 불안함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아이를 풀어주고 자수하라.'라고 권유했다. 정효주의 두 번째 유괴사건이 발생한 4일 뒤, 박정희 대통령의 담화문 발표까지 이루어지게 된다. '죄를 뉘우치고 무사히 돌려보내면 선처하겠다.'라는 박정희 대통령의 발표가 있고 난 뒤, 대통령의 발표 때문인지 이날 경주에서 포항으로 가는 국도변에서 정효주를 발견하게 된다. 사건이 있고 1년 8개월 후에 범인 '이원석'이 체포되는데, 그의 선처를 보장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미 사망한 상태였고 새롭게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상태였기 때문에 2차 유괴사건으 범인인 이원석은 무기징역을 선고받게 된다. 하지만 이원석은 결국엔 20년형으로 감형을 받았는데 이유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근령이 '예전에 아버지가 했던 선처 약속을 지켜주길 바란다.'는 탄원서를 제출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두 번이나 유괴를 당한 정효주는 이후 정신과 치료를 받고 이름도 바꾸었으며, 현재는 미국에서 결혼하여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3. 비하인드

1) 극 중 도사와 형사의 이름은 그대로 실명을 사용했지만, 사건 피해자의 여자아이와 아이가 다니던 학교 이름은 신변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하였다.

2) '김중산'은 경상도 태생이다. 영화에서는 충청도 출신인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배우 '유해진'이 편하게 쓸 수 있는 충청도 사투리를 사용함으로써 자연스러움을 살리기 위함이다. 김중산은 현재도 철학관을 운영중이며 부산에서 지낸다고 한다.

3) 작중에 극비로 차려진 수사본부는 시대 배경을 드러내기 위해 지하극장으로 설정하였지만, 실제의 수사본부는 예식장이었다고 한다.

4) 서울의 수사본부도 소방서인 것은 맞지만, 영화 속처럼 소방차가 있는 공간이 아닌 평범한 사무실이었다고 한다.

5) 서울 형사가 공길용 형사와 다른 부산의 경찰들에게 여의도에는 방송국이 집결해있어 무선 전파에 혼선이 많다고 주의를 주는데, 1978년 당시만 해도 여의도에 방송국은 KBS뿐이었다.

6) 실제로 피해자 가족들은 아이가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며 장어를 방생하였는데, 촬영 때는 장어가 너무 빨리 흩어져버려서 그림이 나오지 않자 결국 돌돔으로 바꾸어 촬영했다고 한다.

7) 영화 예고편에 나오는 '김중산'의 소리치는 장면은 실제로 있던 일이라고 한다. 갑자기 나타나서 알아듣지 못할 말들을 소리치는 바람에 당시의 공길용 형사는 깜짝 놀랐다고 한다.

8) 사건의 마지막에 아이가 발견된 곳은 실제로는 이발소였으나, 영화에서는 만화방으로 나온다.

9) 범인이 잡히는 장면에서 아이가 아버지의 동료를 알아보지 못하고 범인에게 달려가 안기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실제로 체포 당시 있었던 일에 기반한 장면이라고 한다. 당시 체포 현장에서 피해자는 '우리 아저씨 왜 잡아가요!'라고 경찰들에게 소리쳤다는데 이는 매석환이 유괴하는 동안 아이에게 옷을 사주고 맛있는 음식을 사주는 등 잘 대해주었기 때문이고, 그렇기에 매석환이 아빠의 친구라는 것을 끝까지 믿고 있었다고 한다.

10) 공길용이 2010년경에 제주도로 이사를 하였는데, 김중산이 '제주도에 있으면 70살 초반에 세상에 이름을 떨칠 일이 생길 것'이라는 예언했다고 한다. 그리고 '곽경택' 감독이 영화 '극비수사'의 취재를 위해 공길용을 찾아 제주도를 갔는데, 이때 공길용의 나이가 70살 초반이었다. 이후 영화가 개봉하며 공길용의 공로가 빛을 보게 된다.

11) 극 중에서 김중산이 꿈에서 두 명의 범인이 보인다며 혹시 공범이 있지 않을까 추측하지만 범인은 한 명이었고, 이는 영화가 끝날 무렵에 설명에도 나오듯 실제 당사자인 정효주가 약 7개월 후 또다시 납치당한 사실을 어렴풋이 알려준다.

12) 정효주의 어머니 인터뷰에 따르면, 가족 중 누구도 정효주의 유괴사건을 영화화하는 것에 동의한 적이 없다고 한다. 김중산과 공일용을 제외한 피해자 가족들의 이름이 전부 가명으로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인 듯하다.

13) 언론 보도로는 1979년 4월, 두 번째 납치범 '이원석'이 정효주 집의 운전기사였다고 보도하였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실제 이원석은 탈영병이었으며 다른 곳에서 트럭 운전 일을 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정효주 집의 운전기사는 납치 유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지금도 이웃으로 함께 잘 지내고 있다고 한다. 정효주 아버지의 성격 역시 영화와는 전혀 다르다고 한다.

14) 김중산이 정효주의 어머니와 고모에게 예언해주는 장면에서 그의 방에 있는 부적 등 역술가다운 물건들은 실제 김중산이 운영하는 철학관에서 빌려온 것이라고 한다.

 

반응형

댓글